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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노동 앞에서 던지는 질문

지난 3월 11일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된 핵사고가 발생한 지 1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광화문에서는 핵발전소 건설과 유지가 다시 대세로 떠오르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며, 핵 없는 사회를 바라는 천주교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제대 앞에는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에서 볼 수 있는 노란 드럼통 모양의 조형물이 놓였고, 그 위에는 ‘위험·경고’ 표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조형물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그 일을 할까?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곳에서 일할 사람은 누가 남게 될까?’

이 질문은 핵발전소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의 위험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일터와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수단이 되어버린 노동

오늘날 많은 노동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 ‘떠밀려 선택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노동은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함부로 대하는 콜센터 노동자,¹ 살상을 위한 무기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노동자,² 죽음조차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들,³

이들은 모두 ‘땀의 소중함’, ‘산업 역군’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수단으로 취급되는 노동의 현실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는 그 기준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 환대하는 노동을 향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들은 불편을 감내하거나, 때로는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노동을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