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1일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된 핵사고가 발생한 지 1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광화문에서는 핵발전소 건설과 유지가 다시 대세로 떠오르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며, 핵 없는 사회를 바라는 천주교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제대 앞에는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에서 볼 수 있는 노란 드럼통 모양의 조형물이 놓였고, 그 위에는 ‘위험·경고’ 표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조형물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그 일을 할까?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곳에서 일할 사람은 누가 남게 될까?’
이 질문은 핵발전소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의 위험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일터와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노동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 ‘떠밀려 선택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노동은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함부로 대하는 콜센터 노동자,¹ 살상을 위한 무기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노동자,² 죽음조차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들,³
이들은 모두 ‘땀의 소중함’, ‘산업 역군’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수단으로 취급되는 노동의 현실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는 그 기준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들은 불편을 감내하거나, 때로는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노동을 이어갑니다.